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델로스 동맹 (문단 편집) === 운영 === [[파일:터키 델로스.png]] 명목상으로는 모든 국가가 동등한 권리를 나누어갖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동등하게 표를 행사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테네]]의 의중에 따라 모든 것이 좌우되었다.[* 이는 라이벌 격이던 펠로폰네소스 동맹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어쨌든 초기에는 창설 목표를 충실히 이행해서 소아시아 일대의 페르시아 세력을 깨끗이 소탕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점차 변질되기 시작되어서 급기야 가입할 의사가 없는 도시국가까지 강제로 가입시키는 한편 탈퇴까지도 금지시켜버린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아니 이건 들어올때도 마음대로가 아니잖아--[* 실제로 타소스라는 도시국가가 멋대로 탈퇴해버리자 아테네의 주도하에 델로스 연합군이 타소스를 공격해서 모든 것을 파괴, 약탈하는 한편 시민들을 노예로 팔아버린 사례도 있었다.] 여기에 [[페리클레스]]가 집권한 이후로는 아테네의 독단성이 더욱 강해져서 아예 델로스에 자리잡았던 동맹 본부와 금고를 아테네로 옮겨버리는 한편, 델로스 동맹 국가들의 내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델로스 동맹의 연합해군까지도 멋대로 운용하면서 아테네에 대한 동맹국들의 반감은 점점 거세지기 시작한다.[* 정확히 서술하자면 구성국들의 빈민이나 중산층들은 아테네의 민주정을 흠모해서 델로스 동맹에 남아있을 것을 원했고 귀족들이나 부유층들은 [[과두정]]을 심정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탈퇴하길 원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테네는 적극적인 대외팽창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고[* 이 시기 아테네의 외교정책은 20세기 초중반 서구 열강들의 외교정책에 모티브를 준 것으로도 유명하며(노골적으로 식민지로 만들고 착취하지는 않지만 상대를 실질적인 보호국으로 전락시키고 해당 지역의 정부가 아테네에 우호적이지 않은 스탠스를 취하면 당장 전복됐다. 명목상으로는 독립국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영국의 식민지였던 20세기 초반 [[이집트]]나 [[이란]]의 경우를 떠올리면 된다.), 아예 델로스 동맹을 아테네 제국이라고 부르는 역사가들도 있을 정도이다.] 이탈리아 남부에까지 델로스 동맹의 영향력이 미치기 시작하자 이는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 구성국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이탈리아 남부에서 밀을 주로 수입했기 때문에, 펠로폰네소스 동맹 구성국들 역시 이탈리아 남부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고 실제로 다른 지역과 달리 이탈리아 남부에서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국의 시민들이 이주해서 건설한 도시들이 꽤 많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스파르타 시민들이 이주해서 건설한 [[타란토]].] 결국 기원전 431년 두 거대 동맹간의 전면전이 발발하니, 이것이 바로 '그리스의 자살'이라고 불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 30년 가까운 전쟁끝에 기원전 404년 전쟁은 펠로폰네소스 동맹 측의 승리로 끝났고 이에 따라 델로스 동맹은 강제로 해체되게 된다. 참고로, 이 전쟁은 승리자가 스파르타였기 때문에,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강력한 전사 육군 문화(스파르타)가 해양 경제 국가(아테네)를 이겼다고 단순하게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국제적으로 진출하고 발전하던 국가가 육상전과 해상전에서 모두 승리했던 전쟁이었다. 전쟁 초반에는 아테네가 낡고 고루한 군사국가 스파르타를 육상전에서도 여러번 쳐바르면서 승리했다. 반대로, 전쟁 후반에는 지나친 확장과 패권을 추구하던 아테네를 상대로 스파르타는 귀족들이 국가 정체성을 대부분 포기하면서까지 적국 페르시아와 손을 잡으면서 외교 전략을 확장하게 되고,해군 육성에 성공하여 아테네를 제압하게 되었다. 하지만, 군사 국가라는 정치 시스템의 한계가 있었던 스파르타의 헤게모니 역시, 전쟁의 피해를 피하는데 성공하고 무난하게 인구수가 많은 도시국가 [[테베]]에게 금방 무너졌다. 스파르타의 펠레폰네소스 동맹은 낙후된 정치, 경제 구조 때문에, 결코 델로스 동맹처럼 그리스의 무역을 관리할 수 없었다. 아테네가 전쟁이 시작된 이후 30년 동안 점점 오만해지면서 국제 외교를 무시하게 되어 스파르타에게 패배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전략을 잠깐 흉내낼 수는 있어도, 해양진출과 자유로운 이념에 의한 시민들의 국제 교류의 유연성은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의 근본적인 장점이었다. 반대로, 스파르타는 아테네와 델로스 동맹처럼 국제교류 및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일치단결에 매우 중요한 자유로운 사상이 부족해서 평상시에도 주변 국가들과 일일이 마찰이 일어났고, 아테네처럼 인구수가 많은 것도 아니면서 군사력 점령이 없으면 국제 교류를 유지할 수 없는 황당한 시스템을 벗어나기 힘든 군사 국가였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은 재건된다. 하지만, 아테네의 위상은 더이상 예전 같지 않았고, 델로스 동맹의 주도권을 놓고 기원전 357년 구성국들간의 내분이 일어나기도 한다. 기원전 338년에는 아예 그리스 전역이 [[필리포스 2세]]의 마케도니아에게 [[정복]]당하면서 델로스 동맹은 영구적으로 해체된다. [[분류: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동맹]][[분류:고대 아테네]][[분류:페르시아 전쟁]][[분류:펠로폰네소스 전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